부여 사택지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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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내용 [편집]
甲寅年正月九日奈祇城砂宅智積
갑인년[1] 정월 9일 내기성(奈祇城)의 사택지적은
慷身日之易往慨體月之難還穿金
해가 쉬이 가는 것을 슬퍼하고 달이 어렵사리 돌아오는 것이 서러워서, 금을 캐어
以建珍堂鑿玉以立寶塔巍巍慈容
진귀한 집(珍堂)을 짓고 옥을 파내어 보배로운 탑(寶塔)을 세우니, 그 높디높은(巍巍) 한 자애로운 모습은
吐神光以送雲莪莪悲貇含聖明以
신령스런 빛을 토하여 구름을 보내는 듯하고, 그 우뚝 솟은(莪莪) 자비로운 모습은 성스러운 밝음을 머금어...《사택지적비문(砂宅智積碑文)》 여기까지가 비석에 남은 부분이라 더 이상 내용은 알수가 없다. 출처 :『역주 한국고대금석문』(1992年)
3. 발견 과정 [편집]
4. 형태 [편집]
5. 바깥고리 [편집]
6. 보물 제1845호 [편집]
부여 사택지적비는 백제 의자왕대의 인물인 대좌평 사택지적이 은퇴 후 절을 세운 것을 기념하여 만든 것이다. 碑石의 형태를 갖춘 유물로서 백제인의 손으로 제작된 유일한 경우이다. 특히 大姓八族의 하나인 沙宅氏 출신의 沙宅智積은 "일본서기"에서 大佐平의 지위로 왜국에 사신으로 파견된 사실이 확인되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사찰의 殿閣과 塔像을 조성하며 새긴 비석인 만큼, 문화적・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생각된다.
사택지적비는 백제 후기 귀족들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고 백제 관등을 이해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또 격조 높은 문체와 서법은 백제의 수준 높은 문화를 잘 보여준다.
[1] 의자왕 14년(654)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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